오래두고 읽은 《오래된 디자인》

서안부터 화폐까지, 우리 문화 속 디자인을 담백하게 풀어낸 박현택의 《오래된 디자인》. 쉽게 리뷰를 쓸 수 없을 만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귀욤 뮈소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뛰어난 묘사와 판타지적 요소들로 하여금 다 읽고 나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얼마전 그의 책 《종이여자》를 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톰 보이드가 매력적인 애인 오로르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연애는 무척 짧게

끝났고 깊은 사랑에 빠졌던 톰 보이드가 결별 후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백지 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톰 보이드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커녕 글을 잘쓰지도 못하지만, 저 역시 백지 증후군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 꽤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하기를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쓸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어떠한 책 리뷰도

쓰지 않았습니다. 짐작컨데 그 시작은 박현택 선생님의 책 《오래된 디자인》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은 분명 우리 문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소재들을 가벼우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투박한 모양의 송시열 선생의 서안이야기부터 화폐디자인에 관한 이야기까지 각각의 장이

재미있게 구성되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써보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몇 줄 못쓰고

도저히 더 써내려갈 수 없어 무척 당황했지요. 사실 그 갑작스러움에 되려 속으로 책을 힐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그 책을 읽은 후 몇 번을 더 읽었지만, 여전히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 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오래된 디자인》을 읽은 뒤 써놓은 서평들을 읽고나면

나는 왜 리뷰를 쓸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자신감만 떨어졌지요.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그때 저는 이 책을 읽고서 무언가 논리적이고 간결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어서

악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오래'두고 읽은 몇번이나 읽어 본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디자인》은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맛이 있는

우리의 문화를, 조용히 곁에 두다가 톡 건들면 상큼하게 향을 풍기는 레몬허브를 닮았다고나 할까요.

여전히 부족한 설명이라고 여겨집니다만 공감하실 분들이 분명있으리라 생각되네요.

이렇다보니 안그라픽스에서 마련한 박현택 선생님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던 행사를 놓친 것이

오래도록 후회로 남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걸로.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재미있게 책을 읽었지만, 정작 재미있게 리뷰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지요.: - )

오래된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