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파격, 디자인, 존재

현대카드의 파격적인 디자인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디자인으로 구현한 현대카드의 이야기를 통해 존재하는 디자인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저는 경북 예천의 공군기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시골마을 주변이었던 그 곳의 산과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25개월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결정적으로 그 당시 2년간의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기록한 소로의 책《월든》에 빠져있어서 더욱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초, 중학교를 반이 하나밖에 없는 시골학교에서 자란 저의 유년시절의 영향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정말로' 모든 것은 뿌린만큼 거둔다는 것지요. 물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되묻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누구나 아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삶 속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것일 텝니다. 아마 이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때가 되면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일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놀랍고 경이로운 일로 다가올 것입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흙 속의 양분을 섭취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벌과 조우하여 결국에는 다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탄생하는 이런 각 과정들의 상호작용은 분명히 이유있는 결합임이자 우연아닌 우연들의 조합이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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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의 광고 대부분을 맡아서 만든 광고인 김성철님의 책 《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는 현대카드라는 씨앗이 어떻게 지금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계속해서 번식해나가고 있는지를 위에서 언급한 '인식'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현대라는 빽이 있으니 성공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혹은 단순히 디자인 경영의 성공적인 결과로서만 생각했다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합니다. 찬찬히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크게 세 가지에 주목했고, 그에 대해 몇 가지 생각들을 떠올렸습니다.

  1. 격을 파격하는 것

해답을 찾는 과정은 상상을 뛰어넘는 프레임의 파괴이다.

장르에 대한 구속도 없고 방법론에 대한 한계도 없다. 153p

10년 전, 현대카드는 업계 후발주자로서 하루하루가 곧 존망의 위기였습니다. 생존하고자 하니 앞서나가는 경쟁사들을 쫓아가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지요. 대신 천편일률적이었던 당시 카드업계의 관행들을 하나씩 뒤엎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판을 짰습니다. 현대카드이거나 아니거나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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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는 먼저 업계 전체를 통틀어 그동안 허울뿐이던 포인트제도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업계 최초로 개별 브랜드를 만들어 M시리즈부터 나아가 알파벳 시리즈까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렸고 월드클래스 급 스타들이 등장하는 공연을 개최하는가 하면 디자인 도서관을 짓고, 서울역 앞 버스정류장 등 디자인 재능기부를 하고 심지어 주방용품까지 만드는 등 대체 신용카드 회사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일들을 벌입니다. 위의 이야기들이 조금 와닿지 않는다면 작년 현대카드 광고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MC옆길로새'를 잠깐 떠올려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이러한 차별화들이 곧 '현대카드스럽다' 라는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뭔가 범상치 않은 공연이나 광고들을 보면 '이거 현대카드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가 된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늘 새로운 시대는 기존의 격을 파격하면서 도래하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사회나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조선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끊임없이 파격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른 무언가에 의해 파격당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간 현대카드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파격하며 새롭게 만들어 온 것이야 말로 현대카드 시대를 가능하게 만든 남들과 다른 가장 강력한 성공 원칙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1. 본질을 위한 디자인

브랜딩을 위해 메이크업은 필요하지만

의미없는 치장은 낭비에 불과하다. 88p

사실 디자이너들에게도 현대카드는 잘 알려져 있는 회사입니다. 독특한 사내문화와 더불어 디자인 회사가 아니면서도 여느 디자인 회사만큼 멋지고 규모있는 디자인을 많이 하는 곳으로서, 실력있는 디자이너들이 눈독을 들이는 곳 중 하나이지요.

굉장히 디테일한 것 하나 하나까지 디자인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사에 사용할 생수병을 디자인하는 것을 물론이고, M의 미니 컨셉에 맞추어 안내데스크 직원의 바지길이를 줄이고, 그에 맞추어 양말 디자인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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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가 디자인 잘 하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회사이기 때문에 디자인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금융은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어려운 것, 자신과는 특별히 상관없는 것, 그래서 때로는 부정적인 것으로 때로는 불필요한 것으로 잘못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카드 블로그 중에서-

현대카드 블로그에서 그들이 가진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잘 요약하고 있는 내용의 글을 보았습니다. 읽으면서 이들이 디자인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거의 모든 것들에 디자인을 적용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이 현대카드라는 브랜드를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에서도 그에 대한 언급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도나도 디자인에 열을 올리지만 현대카드의 행보가 남달랐던 것은

단 한 순간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각 카드가 지닌 상품적 특성을 나타내기에 언제나 최적의 디자인을 선택했을 뿐이다 26p

디자인은 그 정의처럼 항상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단순히 디자인을 한낱 포장술로만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대카드의 성공적인 디자인 활용이 눈에 띄다보니 현대카드같은 전용서체를 개발해 달라는 주문이 서체개발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현대카드와 같은 디자인 마인드를 가지고 그것을 관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수 많은 디자이너들이 배출되고, 사회에서는 디자인을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질수록 아름다운 외양으로 감성을 사로잡는 디자인이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카드가 추구하는 이유있는 감성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디자이너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지 않을까요.

  1. 스스로 존재하고, 살아있는 것

카피앤페이스트를 하되 현대카드만의 기준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고 이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현대카드의 색깔이 조금씩 정착되기 시작했다. 263p

12년에 걸쳐 촬영된 영화 《보이후드》에서는 아역배우였던 엘라 콜트레인의 실제 성장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씩 변하지만 분명 그 얼굴에는 동일한 인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장과 함께 일어나는 변화들은 이전의 것과 다른 별개가 아니라 변화하는 매 순간과 모든 과정이 존재 그 자체로서 하나의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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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역시 일관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의 성장과 다른 점은 특정한 형태로 포지셔닝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전략과 상황에 맞추어 시장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동시에 특정한 원칙이나 비전이 없으면 유행따라 흘러가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현대카드가 대단한 점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대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이 그들의 철학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현대카드에는 인사이트 트립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임직원들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여행을 가도록 하는 것인데, 제도 자체도 그렇지만, 여행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현대카드스럽게' 재가공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철학에 부합되는 것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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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브랜드는 축적의 산물이다. 자기 원칙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자세와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의 페이스를 지키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갈 때 좋은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 125p

앞서 이야기한 파격과 디자인 역시 현대카드가 '현대카드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는 자기 브랜드 철학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들입니다. 문득 책 속에 등장하는 이런 다양하고 흥미로운 브랜딩 사례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마치 현대카드라는 브랜드가 살아움직이는 생명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특별합니다.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특성을 가진 고유한 존재들이지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차별화 된 자신들만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현대카드의 모습이 그와 유사하다고 여겼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다보니 우리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유행들에 치여서 디자이너 혹은 예술가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도 훨씬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피카소도 고흐도 철저하게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추구했던 사람들인데도 말입니다.

오로지 점수를 따기 위해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오히려 가진 것마저 잃게 된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266p

언젠가 모 프로그램에서 가수 휘성이 했던 조언이 떠오릅니다. 그는 유행을 쫓지 말고 제일 잘하는걸 계속 하다보면 유행이 돌다가 자기에게 맞춰질때가 오는데 그때까지 내공을 쌓으면서 기다리면 좋겠다며 자기만의 관점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영역에 해당되진 않겠지만, 한 번쯤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고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지요.

아마도 제목을 보고 디자인 북리뷰 코너에 왠 마케팅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정체성을 확립한 브랜드인 현대카드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적잖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카드는 이제 《월간 디자인》에도 수 차례 등장하는 영향력있는 브랜드이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살펴본다면 세상에 통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더욱이 디자인과 타 영역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디자인을 디자인 속에서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Reason 리즌 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